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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옥룡사터의 동백꽃은....

물소리~~^ 2013. 4. 2. 00:01

 

 

 

이른 아침에 출발한 덕분에 옥룡사지 올라가는 주차장에도 드물게 일찍 도착했다. 부서지는 햇살에 마냥 뜻 모를 설렘이 동동거린다.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절터의 사연에 곱고도 고운 동백꽃도 함께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봄이면 늘 내 마음을 흔들곤 하였다. 이제야 겨우 그 뜻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 긴 기다림을 동백이 지켜온 길고 긴 세월에 감히 견주고 싶다.

 

소박한 오름길이다. 길옆으로 매화나무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며 낮은 키를 균형 있게 펼치고 있으니 세상이 평화롭다. 낮은 산등성의 곳곳에 진달래 살짝 얼굴 내밀고 있다. 아마도 꽃들의 잔치에 스스로 제 몸을 겸손으로 감추는 듯싶다. 아무렴 너의 그 가련한 빛이 가려지겠느냐고 속엣 말을 건네 본다. 땅위에서는 보랏빛 제비꽃도, 꽃 분홍 광대나물도, 하얗게 핀 냉이도 제 모습 그대로 의기 양양 피우고 있다. 아, 저 개나리는 제 흥에 겨운 듯 하늘을 향해 진노랑 소매 깃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이 봄 무엇 하나 카메라의 모델이 아닌 것이 없다.

 

 

 

얼마나 걸어 올랐을까. 길 옆 작은 도랑에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내 마음이 확 밝아지며 걸음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아, 동백꽃 한 송이가 물위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빛이 너무 고왔다.

눈을 들어보니 어느새 동백 숲이 시작되고 있었다.

도톰한 나뭇잎들의 짙은 초록빛들이 쌓이니 숲이 어둑해 보인다.

그 어둠을 밝히는 불빛! 꽃불!이 있으니 동백꽃이었다.

 

 

 

요란스럽지 않고 한 겹의 옷을 야무지게 여미며 노란 술을
힘 있게 올린 모습은 그대로 당참이었다. 청순함이었다.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떨어진 땅위에서 또 한 번을 핀다.’ 고 한다.
나는 땅에 떨어져서도 발하는 선명한 빛과 고운 모습의 꽃들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러려고 일찍 오른 것일까. 조급함 없이 하나 둘 꽃을 모으다 보니 금세 한 아름이다

 

 

 

 

소꿉놀이 하듯 한참을 주저앉아 꽃으로 꽃 모양을 만들어 보았다.
인적 드문 시간에 오른 나를 모두가 반겨하며 함께 놀아준다.
바람이 쏴~~ 스쳐 가는가 하면
동박새 들은 한 시도 쉬지 않고 서로 짝을 부르며 꽃 사이를 날아다닌다.
참으로 청아한 소리다. 윙~ 하는 소리는 벌들의 소리다.
꽃의 달콤함을 마음껏 취하고 있다.
나도 덩달아 맑은 공기를 마셔보고 눈을 깨끗이 헹구어 본다.
나도 모르게 새가 되고 벌이 되어 날아오르니 마음이 절로 맑아진다.
이렇게 큰 숲이 이렇게 호젓하다니~ 무엇으로 마음의 환희를 표현할지 모르겠다.

 

 

 

 

떨어진 꽃을 비키느라 간혹 내 발은 허공에서 맴돌곤 하니
궁륭을 이루는 동백나무 사잇길은 길이 아닌 꽃구름 길이었다.
저 새들의 지저귐은 내 모습을 우스워 하는 소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가다 뒤돌아보기를 반복하노라니 어느새 눈앞이 환해지면서 커다랗지만 아담한 평지가 나타난다.
아니 약간의 둔덕들이 더 없이 안온한 느낌을 안겨주며 펼쳐진다. 옥룡사 터다.

 

 

 

 

 

천 년 보다 훨씬 앞 선 시기에 도선국사가 절을 짓고 머물던 곳이었다.
신라 4대 선승의 한 사람이기도 한 도선은 또한 풍수의 대가라고 전해온다.
고려 태조 왕건의 앞날을 예언 해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곳에 절을 세우니 제자들이 몰려들며 배움을 청했고
도선은 35년 간 이 절에 머물면서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도선은 이 절의 기운을 보존하기 위해 절을 에워싸듯 동백을 심었다고 한다.
지금의 나무의 나이가 300살에서 600살사이라 하니
그 동안 무수히 씨 뿌리고 새로 돋음을 반복하기를 얼마나 거듭했을까.
간간히 몸통에 시멘트를 채우고 있는 가련한 나무들도 보인다.
천년 숲을 이어온 일등공신이잖은가.

 

 

 

넓은 절터 저 안쪽 멀리에도 동백꽃나무가 무성하다.
나는 살금살금 절터를 밟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 좋은 기운이 내 몸을 타고 오르는 것 같았다.
봄 햇살의 나른함도 함께 해주니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무엄하구나.’ 하는 도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싶기도 하다.

 

 

 

 

 

빈 터였지만 보이지 않는 무엇으로 꽉 차 있었다.
충만함을 안고 아담한 고갯길을 넘으니 도선의 부도탑과 비문이 보인다.
절로 경건해지는 마음으로 돌아서니 높은 나무 위 사이로 거대한 불상이 나타난다.
아니 무슨 일이람? 운문사란다. 옥룡사지 바로 옆에 저런 거대한 불상이라니!!
동백과 옥룡사 터에서의 느낀 진지함이 깜짝 깨어나는 듯싶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 큰 불상이 있어
옥룡사 터의 빈 공간이 더욱 커 보이고 꽉 찬 느낌이 드는 일이다.
어쩜 이 모두는 도선의 예언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이 절 터만큼은 지금 상태로 오래 보존되면서 동백숲도 오래오래 지켜주었으면 싶다.
화르르 피어나는 매화에 벚꽃들에 가려 이곳 동백들의 지명도가 낮지만,
도선의 기운을 받아 품위로 지켜온 동백꽃은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큰 행복감을 안겨 줄 것이다. 꽃이 지기 전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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