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퍼붓듯 비를 쏟아내고 지나간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고도 맑다.
저 맑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아픈 마음들이 더 많아서 일 것이다.
일요일이니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다.
평소와 똑같은 시간으로 일상을 시작하고 집안청소까지 마치고 컴 앞에 앉았다.
막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려 하는데
집 안에서 매미 소리가 난다. 무어지? 어떻게 집안에?? 하며 매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집 안이 아닌,
주방 옆 창 밖 우리 집 가스 배관 위에 매미 한 마리가 앉아 울고 있는 것이다.
아니 지척에 산을 두고 왜 이곳에서 울고 있을까.
사진 찍는 기척에도 날아가지 않고 울고 있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산 쪽에서 우는 매미 소리에 화답하는 듯싶게
소리를 주고받고 있다. 짝을 찾으려는 소리라는데...
입추가 지나고 내일이 말복이고 일주일 후면 처서이니 이제 가을 초입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여름 매미는 끄떡하지 않고 울고 있다.
매미를 바라보노라니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유난히 벌레들을 싫어하는 나인데도 매미만큼은 그렇지 않다,
몸통에 비해 넉넉하게 큰 날개의 무늬는 참 예쁘다.
감촉도 꼭 모시적삼 풀먹여 다려 놓은 듯 까실까실하니 좋다.
매미한테는 배울점도 많다.
6~7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서 지내다 지상으로 나와서는 겨우 20 여일 살다가면서
제 짝을 찾아 종족을 번식시키고 가야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이라니 매미는 우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매미의 역사도 참으로 유구한지라
우리 조상님들은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시끄럽다고 하기 전
수액을 먹고 살아가는 매미의 삶에서 다섯 가지의 덕을 찾아
매미의 오덕이라 칭송하며 생활의 본을 만들며 살아가셨다.
1. 매미의 입이 곧게 뻗은 것은 마치 선비의 갓끈이 늘어진 것을 연상케 하므로
선비처럼 학문(文)을 닦았으며
2. 이슬이나 나무진(수액)을 먹고 사니 맑음(淸)이요.
3. 농부가 가꾼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으니 염치(濂恥)가 있고
4.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으니 검소(儉素)하고
5. 늦가을이 되면 때를 맞추어 죽으니 신의(信義)가 있다 는 오덕을 찾았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옛날 조정에서 임금이나 신하들이 정무를 볼 때
매미 날개 모양의 익선관이라는 관모를 썼는데
이는 매미가 지닌 오덕(文. 淸. 濂. 儉. 信) 을 기억하는 위정자가 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우리 초등시절 여름방학 숙제로 빠지지 않았던 것 중 으뜸은 곤충채집이었다.
이에 매미나 잠자리를 잡으려고 긴 막대에 그물망을 달고
더운 줄도 모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논밭을 뛰어다니곤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방학동안 자연과 접하며 지내라는 숙제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렇게 매미 채집을 하며 지낸 여름이었다면
우리 조상님들은 그림 속에 매미를 그리며 지내셨던 것 같다.
매미의 날개가 정말로 섬세하다
2018년 8월 15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간송특별전< 조선회화명품전>을 관람하면서
전시실 작품의 사진촬영이 허용되었기에 찍었었다
매미 생각을 하다 기어이 뒷산을 올랐다
큰 비 뒤의 오솔길은 패이기도 하고 나뭇잎들이 쌓여있기도 했다
습한 기운과 무더위가 합세한 오솔길에는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있지만
텅 빈 충만함이 가득하다
나의 발을 부드럽게 받혀주는 흙 한 줌도,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옷깃을 스치며 상쾌함을 안겨주는 작은 바람 한 줄기도,
금방이라도 끊어질듯 한 가녀린 줄기위에 얹힌 꽃 한 송이도,
내 옷자락이 스칠 때 마다 한 움큼의 이슬을 선사하는 풀 한 포기도,
땅 위를 부지런히 기어가는 미물들도,
결코 어제의 것이 아닌 오늘의 새로움의 모습을 보여주곤 하기에
오솔길은 언제나 나에게 삶의 활력소로 다가오니 매미처럼 큰소리로 울어 보고도 싶다.
자지러지게 우는 매미들의 소리에 귀가 멍할 정도인데
매미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내 눈에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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