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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여름날의 추억 하나

물소리~~^ 2022. 7. 30. 16:14

 

 

 

   더워도 너무 더운 날, 점심시간에 외식을 하기로 하고 조금 먼 곳,

   폐교를 식당으로 운영하는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음식점까지 한적한 시골길을 차로 달리지만 바깥의 열기는 대단하다.

   이 쨍한 햇볕을 품은 여름의 뜨거움이 없다면

   가을의 반가움이 없을 것이고 겨울의 그리움이 시들할 것이다

   하니 이 여름을 즐겨야 할 것이라며 더위를 바라보니 후끈한 열기로 화답한다.

 

   음식점은 먹음직스러운 쌈밥집인데

   그에 보리 비빔밥을 덤으로 먹을 수 있으니

   나처럼 양이 작은 사람은 보리밥만으로도 한 끼가 충분할 터이지만

   모두들 보리밥을 먼저 챙긴다.

   제육볶음과 함께 구수한 된장찌개를 곁들인 쌈밥을 먹고 나오며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옛 교실 풍경을 둘러보는데

   문득 풍금이 보인다.

   그만 마음이 착 가라 앉으며 머언 시간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작품번호 10번 중 3번의 이별의 노래~~

   이 곡에 가사를 붙여 학창시절에 배웠으니 그 누군들 이 노래를 모를까마는

   나에게는 절대 잊히지 않는 특별한 추억이 담겨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 나의 기쁜 마음

그대에게 바치려하는 이 한 노래를

들으소서 그대를 위한 노래

아~ 아 ~

정답게 나의 마음 불타올라

나의 순정을 받아주소서 그리운 님

떠나가면 나만 홀로 외로움을 어이하리

언제 다시 만나려나 아 그리운 님

나의 순정을 잊지 마소서

그리운 님 그리운 님 ♬

 

 

   중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각 학급마다 풍금 한 대씩 비치되어 있었다.

   사립학교였는데 그나마 재정이 좋은 학교여서 혜택이 조금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루는 방과 후,

   나 혼자 남아 풍금 위에 음악책을 펼쳐놓고 그 즈음 막 배우기 시작한 이별의 곡을 치기 시작했다.

 

   풍금은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근무학교에서 방학이면 틈틈이 빈 교실에 들어가서 풍금을 만지곤 했기에

   그저 음을 골라 누르는 수준이었지만

   내 손 끝에서 가락이 이어져 나오는 재미를 퍽 즐겨했기에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이 덕에 고등학교 음악시간에는 시창을 만점 받기도 했다.

           (시창, 視唱 : 악기의 반주 없이 악보의 음표를 보고 노래 부르는 것)

 

   그렇게 풍금 앞에 앉아 흥얼거리며 이별의 곡을 치고 있었는데

   문득 뒤에서 “야 임마, 니가 뭘 안다고 그런 노래를 해?”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미술 선생님이셨다.

   옆 반 담임선생님이시기도 했고 얼굴이 넓다하여 별명이 ‘넙죽이’ 였다.

   지금 성함은 생각이 안 나는데도 별명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학생들 없는 교실에서 들려오는 풍금소리 따라 들어오신 것 같았다.

 

   선생님은 아마도 가사 내용으로 그렇게 말씀을 하셨겠지만

   놀라 멈칫하고 있는 나보고 계속 하라고 하시면서 한참을 서 계시다가

   내 머리에 꿀밤 한 대를 살짝 내리고 가셨다.

   나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나를 예뻐하신다는 생각으로 못내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이제 사회인으로, 일반인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특별함으로 인식되어지는 일을 느낄 때면 이 곡과 함께

   그때 그 감정이 늘 함께 겹쳐지면서 조금은 행복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작곡한 쇼팽 자신도 스스로 이 곡을 아름답다고 말을 했지만

   이별의 노래라는 이 곡 이름을 쇼팽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후대의 연주가들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쇼팽보다 아주, 아주 훗날을 살아가는 나 역시

   그만큼 서정적이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편안한 곡이라고 느꼈기에

   비록 피아노가 아닌 풍금이었지만 연습하면서 곡을 즐겨 익혔던 것 같다.

   또한 나는 이 곡 이름과 가사내용 때문에 선생님으로부터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이 곡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큼의

   무슨 사연으로 추억에 젖어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가져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서를 안겨주는 추억, 향수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은 절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의 물체나 소리 등 형체가 존재하는 것 등의 사물에 기대어 형성되는 감성인 것이다.

   하여 어릴 적의 추억이나 향수에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함께 녹아 있기에

   늘 그리운 것이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사춘기 시절 풍금을 치며 혼자 즐겨했던 시간이 애상적인 과거라면

   점심식사를 하며 옛 시절을 생각하는 지금은 극히 현실적이지 않는가.

   나의 늙어감에 과거의 추억이 묻히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여름 어느 하루 문득 사춘기 소녀가 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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