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초가을, 억새곁에 서서

물소리~~^ 2021. 10. 5. 14:01

 

 

   대체휴일~

   어쩌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그런 날일까

   월말 일에 떠밀려 사무실에 나왔다가

   오후 4시쯤 차를 몰고 나왔다.

   저쪽 공항 근처 CC클럽 가는 길을 드라이브나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길은 한적하기도 하고

   길가에는 산국도 감국도, 억새도 뚱딴지도 감나무도 제각각의 모습으로

   파란 하늘 하나를 나누어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 다정스런 길이다

   혼자서 그 길을 찾아 가노라니

   소슬한 가을 맛이 내 마음에 소슬소슬 젖어드는 것이다.

   그냥 막연히 조금은 슬프다.

 

   아,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외롭던,

   그래서 더 좋았던 그 길의 한적함이 사라지고 있었다.

   클럽에 기대어 부수적인 수입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건물을 짓고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 너른 억새밭이 사라졌고

   길가의 산국들은 오가는 공사 차량에 뭉개져 있었다.

   쿵! 무너지는 마음 안으로 쓸쓸함이 밀려드는데

   길가 억새 한 무리가 하얀 머리를 날리며 나를 맞이한다.

   차를 정지하고 내려 가만히 그들 곁에 서 보았다.

   그렇지 억새는 역광에서 더욱 멋진 모습으로 보인다고 했던가.

 

   이렇게 찍어 보고 저렇게도 찍는데

   갑자기 울 어머니 머리가 생각나며 울컥해진다.

 

 

울 어머니는 18세에 20세의 울 아버지와 결혼 하셨다

그 후, 76년을 한결같이 쪽진 머리를 하고 계신 울 어머니~~

내 기억으로는 파마도 염색도 한 번 안하고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지금 연세에도 반백의 머리를 유지하고 계셨다.

 

지난 7월, 골절로 노인요양병원으로 가셨고

첫 번째 면회를 하던 날,

우리는 그냥, 똑같이 ‘어머니 머리’라며 놀라워했다.

단발머리로 싹둑 자른 머리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우리가 그토록 머리 한 번 잘라보자 해도

아니라고, 절대 안 한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그날만큼은 유독 어머니가 단정하고 깔끔해 보이셔서

   ‘어머니 더 예뻐지셨다’ 고 우리는 말했다.

   이런 저런 말들에도 아무 대꾸도 안 하시며 조용히 계시다가

   우리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시고

   간호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 가셨다.

 

   두 번째 면회일에 우리는 더욱 놀랐다.

   단발머리였던 어머니 머리가 귀 밑까지 짧아져 있었던 것이다.

   영양 콧줄에 날카로워지신 심정에

   자꾸만 여위어 가시는 얼굴에서는 편안함이 보이지 않았다.

 

 

 

 

   역광으로 바라보는 억새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라는 말은 그 누가 했을까.

   빛바랜 어머니의 결혼식 사진을 바라보며

   역광으로 찍힌 억새의 모습을 바라보며

   얇디나 얇은 인생의 시간을 돌려

   우리 어머니의 18세 모습을 역광으로 바라보며 ‘울 어머니 참 이쁘네~~’

   속으로 되뇌어 본다.

  

   이른 아침 국민연금 공단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공무원연금을 유족연금으로 수령하고 계시는 울 어머니신데

   연세가 많으시니

   연금 수령에 하자는 없는지, 생존해 계시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아, 나이가 많으면

   이렇게 모두에게 삶의 모습과 시간을 체크 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보다

   가슴에 아득함을 쌓으며 천천히 차머리를 돌렸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한 아침에.....  (0) 2022.01.05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  (0) 2021.11.23
디펜바키아  (0) 2021.07.05
매실청을 담그며...  (0) 2021.06.27
야단법석(野壇法席)  (0) 202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