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우리 아버지께서는 정년퇴임을 하시고 경기도 일산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아들들이 그곳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지내고 있기도 했지만
유난히 학구열이 강하셨던 아버지 스스로 퇴임 후
첫째 목표이신 대학원에 다니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시립대학원을 수료하시고 소일하시던 아버지께서
18년 전에 먼저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아파트를 지키며 아들들 곁에서 지내셨다.
어느 해 어머니 생신 즈음에 일산의 어머니 댁을 방문하였다
마중 나온 어머니는 내가 차를 주차하자마자 나를 데리고
아파트 화단으로 가시는 것이다.
우리 라인으로 올라가는 화단 한 구석에 능소화가 줄기를 타고 오르고 있었는데
울 어머니는 그걸 가르치며 ‘이것 내가 심었다’ 하시는 것이다.
경비아저씨들이 심을 수 없다고 말리셨지만
울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꽃이라고,
어지럽지 않게 잘 정리하겠다며 승낙을 받으셨던 모양이다.
그날, 그렇게 그냥 마음이 찡해지면서
울 아버지께서 능소화. 한련화 등을 좋아하시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시고
공부들을 잘 해 모두 서울대를 졸업하고 쟁쟁하던 아들 둘을 앞세우신 어머니~~
아들 하나만을 남겨두고 계셨다.
혼자 계셔 외로우실 것이라고
전주에 살던 언니가
언니 집 옆으로 아파트를 구입하여 어머니를 내려오시게 한 후,
지금까지 지내고 계셨다
올해로 우리 나이 94세이신 어머니는
시일이 지날수록 연로해 지시니
몇 해 전부터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계셨지만
혈압, 당뇨약을 드시는 외에는
병원에 입원 한 번 하지 않고 지내시고 계신다
나는 매일 아침 8시 전후에서 문안 전화를 드리곤 했다.
어느 날은 목소리가 잠겨 있으면
“어머니 아직 안 일어 나셨네?” 하면 울 어머니도 “아직도 자빠져 있다” 로 대답 하시고
목소리가 맑은 날이면
“어머니 벌써 일어나셨어?” 하면
“식탁에 앉아 바나나 하나 먹고 있다.” 또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다” 라고 대답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능소화가 만발하고 원추리가 피고 모감주나무 꽃이 한창인 시절이
음력으로 어머니 생신~
올 해도 7월 11일이기에
우리는 정읍 옥정호 주변의 한옥 팬션 한 채를 예약해 놓고
오랜만에 만나는 즐거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7일 아침에도 어느 때와 다름없이 안부 전화를 드리니
'자빠져 있다' 라고 말씀 하시는데 힘이 하나도 없으시다
어디 아프시냐고 물으니 ‘아이고 다리야~~’ 하시는데 비명에 가까웠다.
전화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었고
잠시 후, 요양사 출근하여 상태를 물으니
평소에도 다리가 저리고 하였으니 괜찮아지실 거라고 하면서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신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옆에 사는 언니가 와서 병원 가자고 해도 안 가신다고 억지를 부리니
전화로 서울 아들을 불러 몇 번이나 설득하여
결국 119차로 병원 응급실로 가셨다.
요즈음 병원응급실에는
코로나 검사를 해야만 하는 곳이고 보호자도 1명만 허락한다.
언니만 입실을 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백신접종 2차까지 마치셨고
코로나도 음성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간다.
다리가 넘 아파 움직이지 못하시니 속옷을 기저귀로 갈아야 했고
그런데.....
의사가 아픈 다리 ct 촬영 사진을 보여주면서 치골골절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런 위해가 없었는데도 절로 골절이 된 상태!
그런데 더욱 막막한 것은 연세가 있으셔서 수술은 절대 아니 되고
저절로 뼈가 붙기를 바래야만 하는데 6주 정도 걸린단다.
그것도 확실한 결과가 아니고 평균적인 수치란다.
하니 응급실은 수술 위급환자가 아니면 있을 수 없다며
정형외과로 옮기라고 한다. 청천벽력이다
구급차도 내 줄 수 없으니 사설 구급차를 불러야 한단다.
갑자기 당한 일이니 정형외과를 알아 볼 수 도 없는 일,
당황스럽기만 한데 남동생이 전화로 여기저기 알아봐 알려준 한 정형외과로 갔다.
어둑해지는 시각이었지만
그 병원에서 또 다시 사진을 찍고
MRI까지 찍어봐야 한다고 하니
기계 속으로 들어가신 어머니는 두려우신지 연신 몸을 뒤척이며
내 이름을 부르곤 하신다.
어머니는 지금 당신이 요양원으로 가실까 봐 두려워하시는 것이다.
결국 mri 사진 촬영은 불발로 끝나고 병실로 들어가시고
나는 억수같이 내리는 비 사이를 운전하고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다음 날,
정형외과에서도 역시나 수술을 못하고
진통제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퇴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 때부터 우리 형제들은 맨붕이 되었다
결국은 요양병원을 택하라는 뜻인 것이다.
교수로 재직하는 남동생이 모든 일정을 접고 금요일 아침 일찍 내려왔고
우선은 치료를 해야 해서 요양원이 아닌 노인전문병원으로 옮겼다.
다만 의사가 있는 것 외에는 요양원이나 다름없는 곳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우리 형제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막연히 깊은 계곡으로 떨어져 버린 느낌에
자꾸만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코로나로 면회도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갑자기 당한 일에 울 어머니도 정신이 나가신 듯
전화기 너머로 자꾸 헛소리만 하신다. 어쩔까
누가 말만 걸어와도 밀려드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며칠을 지내고 있다.
생신을 맞이하려고 준비하고 맞춤해둔 음식들을 취소해야했고
팬션도 취소하니 반값만 돌려준다.
아, 우리가, 내가 지금 순간 택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지..
지금 울 아버지는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시겠지?
우리들을 야단치실 것만 같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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