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절기상 여름에 들어선다는 입하란다.
새삼 세월의 빠름을 느끼며 이른 아침 무심코 베란다에 나서 창밖을 바라보니 산등성의 연초록 나무들이 참으로 싱싱하다. 나무들은 서로 다른 초록의 물감으로 제 빛을 보여주고 있는 듯싶다. 만지지 않아도 전해오는 한없는 부드러움에서 문득 희망의 냄새를 맡아본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너무 아까워 저 봄빛 속에 잠겨보고 싶은 충동에 기어이 차림을 하고 나섰다.
새벽 산을 만나는 일이 얼마만인지… 동안 부실한 몸 핑계로, 또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을 베어내어 허허로워진 산의 어설픔에 못내 마음을 두지 못하는 이유를 대면서 뜸한 발길을 내디디곤 했다. 아, 그런데 나무들은 어느새 제 몸의 활기로 빈 산을 꽉 채우며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들은 그 무엇도 원망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자연스럽게 가꾸고 있는 것을 나는 몰라보고 있었다.
등나무 늘어진 작은 공원 옆을 지나 산 초입에 들어서니 그새 오솔길을 단장해 놓은 손길들이 느껴진다. 우리 지역에도 구불길이라는 이름의 둘레길이 있고, 우리 뒷산이 그 6코스에 속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정표도 있고 제법 높이?가 있는 봉우리에는 표지를 만들어 걸어 놓기도 하였다. 약 90m 높이의 봉우리 5개가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있으니 적당히 숨이 차기도하고 편안해지기도 하면서 즐거움을 선사하는 오솔길이다. 비록 낮은 동네 뒷산이지만 온 우주를 품고 있는 큰 산이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하곤 한다.
산의 나무들은 어느새 흰 꽃들을 피우고 있다. 이제 나무들은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벌 나비들을 불러 수정을 해야 한다. 5월 초록이 가득한 곳에서는 흰 꽃을 피워야 벌이나 나비들의 눈에 잘 띄기 때문이라고 하니 이 이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참으로 신비롭기만 하다. 늘 그 자리에서 살아가지만 항상 새로움을 보여주는 나무, 식물들을 하나씩 눈 맞춤하며 걸었다.
▲ 예덕나무
이른 봄에 잎이 꽃처럼 돋아난다.
나는 이름처럼 예와 덕을 지닌 나무라고 불러주며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나도 따라 겸손해 지기를 소망한다.
▲ 덜꿩나무
나무 열매를 들에 있는 꿩들이 좋아한다 해서 들꿩나무로 부르다가
덜꿩나무로 되었다고 한다
▲ 오월의 숲 ▼
▲ 지난 가을의 열매 집을 차마 버리지 못한 개암나무
▲ 팥배나무
열매가 붉은 팥알같이 생겼다고 팥배나무라고 한다
올 해 유난히 꽃이 많이 피었으니 열매를 많이 맺어
새들의 겨울 양식으로 넉넉하게 나누어 줄 것이다.
▲ 초록 나뭇잎 터널
▲ 팽나무
▲ 국수나무
▲ 땅비싸리
▲ 선밀나물
넌출거리는 등나무 곁을 지나 산을 오르고
산을 내려와
어느 담장 밖으로 멋스럽게 뻗어 내린 꽃 넌출 아래를 지나 돌아왔다.
비록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월의 숲을 거닐면서
연초록 잎들에서 희망을 바라보고
텅 빈 산을 채우며 살아가는 나무들의 열정을 배웠다.
지난겨울부터 5개월 동안 따라하던 요가 시간을 접고
이제 다시 산을 오르며 산의 정기로 내 일상을 멋지게 채색해 보기로 다짐해본다.
여름의 문턱에 서서…
'꽃과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쥐똥나무 (0) | 2019.06.14 |
---|---|
돌가시나무 (0) | 2019.06.04 |
각시붓꽃 (0) | 2019.05.01 |
드디어 콩고의 꽃이 피었습니다. (0) | 2019.03.11 |
귀한 열매를 만나고~~(잉여자, 멀꿀나무) (0) | 201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