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보름달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는 하늘의 반달,
주고받는 고운 마음들을 이어주려 밤새 지킴이를 하고 있는 산위 송신탑의 불빛,
우리 아파트의 밤을 지켜주는 땅위의 울타리 가로등,
하늘, 산, 땅위서 제 각각의 모습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이채로움은
초가을 초저녁이 보내주는 조화로움의 기호인 듯싶다.
평소 안면이 있던 지인을 목욕탕에서 만났다. 조심스레 내 건강의 회복여부를 물으며 더 없이 착한사람이니 병도 물러날 것이라고 덕담을 준다. 그냥 지나치며 해주는 공치사라 생각하면서도 기분은 좋다. 알맞은 온도의 탕 속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꾸 무언가를 멈칫멈칫하더니 울 아들들의 혼인은 언제 할 거냐고 묻는다. 아직 짝들이 없다하니 자기가 한 번 주선해 보고 싶은데 괜찮으냐고 묻는다.
사실 망설여졌다. 지금까지 그렇게 중매로 아이들 혼인을 시켜줄 마음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 흠 잡을 데 없는 아이들이기에 희망이 더 컸었는데 작년 일 년 동안 내 아픔으로 아들들 기가 팍 꺾였다.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들이기에 요즈음 더욱 신경이 쓰이는 터였다. 지인은 간단한 프로필을 적어 달라고 한다. 또 망설여진다. 우리 아들들의 귀한 정보가 이리저리 나돌아 다니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어디 한 번 부딪쳐보자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의 간단한 프로필을 적었다. 행여 정성이 부족할까싶어 또박또박 쓴 메모지를 봉투에 넣어 건네주었다. 단지 꼭 이루어 달라는 요지가 아닌 어떤 기회에 자주 당면해보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얼마 있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적어준 메모의 내용 중, 키 ≒ 183cm 이렇게 적었는데 ≒는 무슨 뜻이냐 묻는다. 아뿔싸! 또 내가 건방졌나 보다. 키가 약 183cm라는 말이라고 하니 깔깔 웃으며 느닷없는 문자에 뭘 잘못 썼나 확인해본 참이란다.
나는 수학기호를 종종 즐겨 사용하곤 한다. 예를 들면 “∴= 따라서”, “∵= 왜냐하면” 등이다. 국어 같으면 서술형으로 써도 되겠지만 숫자를 나열하여 수 값을 창출해야하는 수학에서는 서술형이 군더더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이렇게 기호를 나타내어 그 뜻을 전달한다는 것을 나는 참으로 좋아했다. 은근함이 있고, 맺고 끊음의 확실성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인연이 있는 짝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말로 늦 결혼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누군지도 모를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이 진정 있는 것이라면 은근함의 그 어떤 기호로 미리 다가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동화적 생각에 머무른다.
승낙한다는 뜻으로의 ‘따라서’, 거부하는 이유를 ‘왜냐하면’ 대신에 ∴, ∵로 표해 보인다면 좋지 않을까? 하하(^+^)~~
서늘한 가을기운에 내 머리가 쉬어가고 싶은가 보다.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어딘가에 숨어있을 우리 아이들 짝에 대한 좋은 사람을 기다려 보는 숨길 수 없는 내 마음의 기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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