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나물
날이 참 많이 서늘해졌다.
움츠려드는 몸을 달래기 위해 7부 소매 옷을 찾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 초록빛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으니
가을을 느끼는 마음은 비록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한가한 시간을 틈타 조심스레 길을 따라 걸었다.
간간히 뿌리는 비 사이로
잔잔히 이는 바람결에
길가의 풀들이 바람을 그려낸다.
투명인간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바람은
스쳐 지나는 사물들에
제 모습을 그려보라는 숙제를 내 주었을까.
느닷없는 숙제하느라 여념이 없는 가련한 꽃,
고추나물 꽃잎 위에
후드득 비 한 방울이 떨어진다.
바람을 그리던 꽃송이가 휘청거린다.
어쩌면 나처럼 온 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순간처럼
무거움을 고스란히 받아 버린다.
꽃은 얼마나 아플까
무거움의 고통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
빗방울이 내려앉은 시간은 순간이었지만
꽃에게는 긴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을…
하지만 꽃은 금방 물방울을 털고
나지막이 웃고 있다.
고통을 이겨내고
이 가을에 고추 닮은 열매를 빨갛게 익혀서
제 이름 값을 해 내야하기 때문이리라.
나도 이제 조금씩 웃어도 되겠지…
내 몫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