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칡
좋은 꽃, 신기한 꽃을 보면
사진 찍어 보내주는 벗이 있어 행복하다.
폰을 타고 날아온 사진에 눈이 콕 박힌다.
주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 등나무와 닮았고
잎이 칡과 비슷하여 등칡이란 이름이 붙었다.
마치 넝마주이가 지고 다니는 걸망처럼 생긴 모습을 보고
처음엔 식충식물인 줄 알았는데
오롯한 꽃의 모습으로, 특별함으로 자란다.
마치 무언가를 소중히 담아 놓으려는 듯 가지런하다.
하지만 이는 꽃가루받이를 완벽하게 하기위한 미로다.
이 속에 들어간 곤충들은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제 몸에 묻은 꽃가루를 남김없이 털어내는데
토사구팽이라고 했던가? 이 곤충은 살아나오지 못한단다.
나는 문득 이 꽃이 심심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창조적 사고는 심심함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서 심심함을 즐기다 만유인력을 발견했고
파브르 역시 심심해서 벌레들을 바라보며 지내다 곤충학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아마 이 등칡도
숲 속에서의 무료함과 심심함으로
제 꽃모습을 바꾸어가며 곤충들을 유혹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유혹한 곤충들을 살려 보내지 못하는 비정함은 있지만
일상의 따분함 속에서
한 순간 마술을 부리며 즐기며 살아가는 에너지를 느꼈을까.
바쁜 일상 속을 겉도는 요즈음,
문득 느껴지는 심심함과 내 몸의 무료함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달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