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차 뒷좌석에 커다란 검정비닐봉투가 놓여 있기에
이게 뭐냐고 물으니 남편은 부스럭거리며 안의 내용물을 꺼낸다.
어머나~ 앙증맞은 작은 원두막이었다.
길을 가다 만났는데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20,000원을 주고 샀단다.
나를 생각해 사온 감사함은 순간,
내 마음은 어느덧 머언 그리움을 찾아 나선다.
이것을 집안 어느 곳에 둘까?
여기도 놓아보고, 저기도 놓아보고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오두방정을 떨던 나는
어느새 원두막의 달콤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원두막은 초등 5학년 때,
학교 가는 길에서 만난 원두막이었다.
길목에 있는 정자 비슷한 원두막 아래에 밭은 있었지만 참외나 수박은 없었다.
어쩌면 동네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있었던 듯,
한 여름 농촌의 바쁜 일손들은 원두막을 거의 비워두고 있었다.
오롯이 서있으면서도 아담하고 정겨움을 지닌 아늑함이 있어
학교 오가는 길에 가끔 혼자 올라가 귀퉁이에 앉아
발아래 굽어보이는 밭작물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높은 하늘의 구름을 따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친구와 함께 올라 숙제를 했던 기억도 있다.
園頭幕의 원두(園頭)는
밭에 심어 기르는 각종 채소 과일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참외, 수박, 오이로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의 군것질로는 최상급이었지만
그 또한 귀한 것이었기에 서리라는 말로 합리화 시키며 한 두 개씩
거저 가져다 먹으려 했던 시절이었다.
서리를 막기 위해 지어 놓은 원두막은
각박한 인심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한번쯤 눈감아 주는 주인네의 인심이 있었기에
오히려 다정하고,
정겨움으로 오래 남아 있는 참으로 소중한 우리의 정서는
어디 한 두 사람만의 추억일까
원두막 대신
후텁지근한 비닐하우스가 강물처럼 펼쳐져 있는
요즈음의 들판에서는
볏짚으로 이은 지붕을
달랑 네 개의 기둥으로 받치고 있는 그 간결한 부드러움을 찾을 수 없다.
자꾸 잊혀져가는 우리의 정서를
이제는 장난감에서라도 찾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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