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귀한 꽃도 아닌데
해마다 수국이 피는 때면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수국은
“가까이 오지마세요”
나한테 물들어 버릴 테니까요.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할 줄 모르는데,
무슨 색이 될지 모르는데,
지금 순간의 나의 색에 물들어 후회하지 말아요.“
수국은 그 무거운 머리를
끄덕끄덕 흔들며 살짝살짝 비키는 몸짓으로 서있다.
금방이라도 땅에 닿을 듯 위태로운 흔들림에도
수국은 꽃잎하나 땅에 끌리지 않는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다.
커다란 몸을 저렇게나 잘 간수하다니…
자꾸만 바라보며 오가다 기어이 카메라를 디밀고 말았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백낙천이 군수급 정도의 벼슬지위에 있을 때
어느 날 관내에 있던 초현사라는 절에 가게 되었다.
초현사 뜰에는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백낙천은 여러 가지 꽃들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는데
초현사의 주지가 다가오며 한 꽃을 가리키며 무슨 꽃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백낙천은 알 수가 없었다.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가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난 후의 푸르디 푸른 하늘처럼 고운 색으로,
그저 보고만 있어도 시원해지는 느낌의 상쾌한 그 꽃은
공처럼 둥글고 무거우리만큼 소담하게 몽우리져 피어 있었다.
“꽃 이름을 모르겠는데요” 대답을 하자
주지스님은 꽃 이름을 멋지게 지어달라고 말하였다.
백낙천은 다시금 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부드럽게 비치는 보랏빛은
분명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신기한 색상이었고
흡사 등대 끝의 절벽 위에 서서 푸른바다를 바라보면
저도 모르게 물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과 매력을 준다고 생각했다.
“고운 꽃잎에 이슬이 맺혀 진주알처럼 영롱히 빛나는 아침과 같군요.”
“오렌지빛 노을이 곱게 물들어 푸른 잎에 반사되는 그 매력도
다른 꽃과는 비길 수가 없군요”
주지스님은
지금 백 선생이 표현하신 여러 가지 뜻을 나타내는 이름 하나를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백낙천은 할 수 없이 이름을 지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꽃은 하늘에서 내려온 꽃이라 생각되니 자양화라고 부르면 어떻겠습니까?”
“꽃빛깔의 변화무쌍함이 예사 꽃과는 다릅니다.
"처음에 희다가 금세 분홍으로, 그리고 또다시 하늘색을 변하는 걸 보니 신기하기만 하군요”
하여 그 꽃을 자양화라 불렀다.
그 후, 꽃은 변하기 쉬운 처녀의 마음처럼 변화무쌍하다하여
칠변화로 불리다가 다시 수국으로 불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