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3월 29일,
오늘로서 우리 집 리모델링을 마친지 딱 일 년이 되었다.
새집처럼 꾸며놓은 집에 들어와 모든 것을 새롭게 맞추어 나가면서
많은 것을 비우고 버렸던 것 같다
그 결과 지금은 주방이며. 옷장, 신발장 등의 수납장이 널널하고 여유롭다.
일 년 동안 행여 새로운 것에 흠집이라도 날까 아끼며 닦아온 것은 물론,
혹시 모를 하자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하며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며 지내왔고 대 여섯 번의 AS를 받기도 했다.
이제 일 년이 지났으니 무상 AS 는 끝이 났고
앞으로는 비용을 들여가며 고치고 바꿔야 하는데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퇴근 후, 말끔히 정리된 집에 돌아오면 참으로 마음이 편하다.
집이란 무엇인가~~
가족들이 마음 편히 쉬며 지내는 아늑한 둥지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아이들 어렸을 적부터 일을 해 왔기에
아이들이 나 없는 시간에 집에 들어와도
편안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늘 집안을 정리하며 지내왔다.
엊그제 일요일 오전에 어머니 집에 다녀왔다.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신 후 집은 텅 비었지만
겨울철 집안의 온기가 돌도록 보일러를 조정 해 놓았기에
이제 보일러 가동을 멈추기 위해서였지만
어머니 베란다에서 봄이면 활짝 피어나는 영산홍의 안부가 궁금했다.
가끔 들리는 식구들이 물을 주긴 했지만
자꾸 말라간다는 말을 들을 때 마다 아쉬움이 컸다.
매년 꽃이 피면
언니나 요양보호사더러 사진을 찍어
자식들 모두에게 보내 주라고 하셨던 어머니이시기에
영산홍은 그냥 그 자리에서 오래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머니아파트 입구의 마트를 지나노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어머니께서 집에 없는 무언가를 잡수고 싶으시면
이 마트에 전화를 하여 부탁하셨다고 한다.
마트 주인은 늘 친절하게 가져다 주셨기에
어머니 집에 갈 때면 마트부터 들려
행여 우리 어머니가 대금을 치르지 못한 것이 있는지 확인부터 했던 곳!
이제는 그냥 지나치면서도 눈길은 마트 주변을 맴돈다.
우편함이 말끔히 비워 있는 것이 아마도 언니가 다녀간 듯싶다.
열쇠를 꽂고 문을 가만히 열었다.
열쇠도 주인이 없는 것을 아는지 잘 맞추어지지 않는다.
진즉부터 번호 키로 바꾸려 했지만
어머니는 병원이나 잠깐 외출이라도 하실 때면 늘 열쇠부터 챙기곤 하셨으니
번호 키로 바꾸면 번호를 자꾸 잊으실 것 같고,
그래서 문을 열지 못하시면 얼마나 놀라실까 하는 염려로
그냥 그대로 열쇠 키로 놓아두었었다.
정적만이 감도는 집안에
봄 한낮의 햇살이 반쯤 들어와 있다
벌써 9개월이 지났지만 집안의 모든 것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 영산홍은 이제 죽은 듯싶다. 바스락거리는 갈색 잎만 무수히 달려 있었으니…
아니!!! 그런데
베란다 한 쪽에 놓아둔 양파들이 새싹을 일제히 올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 울 어머니를 기다리는 또 다른 생명이구나~~
밀대로 걸레청소를 쓱쓱 하면서도
어머니 채취가 가득한 곳 여기저기를
쳐다보느라고 자꾸만 손이 멈춘다.
어머니의 쉼터가 되셨던 쇼파 밑,
작은 가방을 열어보니 현금 38,000원이 들어 있다.
지퍼를 잠그고 가만히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가끔 짜장면이 잡수고 싶을 때는 그 돈을 내밀며 시켜 달라고 하셨는데…
어쩜! 벽에 걸린 커다란 달력은 아직도 21년 7월을 펼치고 있다.
7월 7일에 골절로 응급실에 가신 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계신 것이다.
식탁위에는 아버지 퇴임기념으로 받으신 아주 오래된 탁상시계가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아버지께서도 지금 지켜보고 계시겠지?
아침에 한잔씩 마시던 믹스커피는 주인을 기다리며 수납장 안에 있고
냉장고 안에는 저장 음식들이 가지런하다.
김치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대신 쌀 등 곡식이 자리차지 하고 있구나.
아. 우리 어머니~
비록 크고 화려하지 않은 작은집이지만 지금
얼마나 집에 돌아오고 싶으실까!
가슴이 자꾸만 미어지며
형체없는 아련함이 후두둑 후두둑 내 마음 안으로 떨어지고 있다
걸레를 빨아 널고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여기 집에서 30여분을 달리면 어머니 병원이 있는데
면회는 안 되지만
그냥 건물이라도 바라보고 오려고 차 방향을 돌렸다.
면회가 금지된 병원 주차장이 한가하다
가만히 내려서 어머니계신 병동의 창문을 바라보고 돌아서는데
화단의 수선화가 곱게도 피었다.
이곳이 이제 어머니의 둥지가 되는 것일까
수선화의 노란빛을 대하노라니 문득 노랑색을 좋아했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새 둥지 그림이 떠오른다.
둥지,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흔히 새의 집을 둥지라 일컫지만
우리 집도 우리의 둥지가 될 수 있고
어머니 집도 어머니의 둥지가 되는 것이니…
빈센트의 외로움을 받아주었을 것 같은 새둥지 그림의 깊숙한 은밀함에
까닭 모르게 안도감이 스며온다.
새롭게 단장한 내 둥지에서도,
또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어머니의 둥지에서도
언제나 이런 안도감이 스며오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