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을 담그며.....
림프종 진단 후, 항암치료를 마치고
다시 조혈모세포이식을 한 지 이달 26일이 되면 딱 1년이 된다. 이식 후,
지난 9월 2차 검진에서 결과가 좋아 이제는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가는 치료 일정이기에
비교적 순탄한 일정으로 지낸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지내고 있지만
지독한 아픔의 시간을 겪은 후, 자꾸만 틈틈이 무언가를 정리하고픈 마음이 든다.
행여 내가 없을 때
식구들 누군가가 찾기 쉽고,
또 조금이라도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마음이 앞서곤 하는 까닭이다.
하여 이불을 정리 했고 그릇들을 조금씩 정리했다.
이 또한 하루 이틀 지나면서 다시 정리해야하는 것들로 줄을 서곤 하겠지만
우선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냉장고를 정리하고픈 마음이 들어 문을 여닫으며 어떻게 할까를 궁리하다보니
고춧가루봉지 서너 개가 냉동실 문 칸을 몽땅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장철이 되면 친정어머님이 보내주시곤 했던 것들인데
김장도 형님네 가서 함께하곤 했기에 거의 손대지 않고 넣어둔 것이다.
이제는 연로하심으로 요즈음에는 보내주시지 않으니
벌써 4~5년은 됨직한 고춧가루들로 약 3kg 정도의 분량이었다.
이 고춧가루들로 고추장 담기에 도전해 보자고 작심하였다.
실패할 경우를 생각해 1kg정도만 해 보려고 준비를 했다.
결혼 초에는 고추장을 담아서 먹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담아 주는 것 받아먹고, 사서 먹곤 하느라
담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이다.
인터넷검색을 하여 만드는 법을 찾아보며 읽노라니 옛 하던 방식이 스쳐 지난다.
고춧가루 1kg에 맞는 다른 재료들을 잘도 알려주니 그대로 준비했다
메주가루만 없고 집에 다 있는 재료이니 수월하다.
메주가루는 이곳 로컬푸드에 가서 구매하여
고춧가루 1kg, 메주가루 400g, 찹쌀가루 700g,
엿기름 400g, 쌀조청 400g, 천일염 500g을 챙겨놓으니 제법 그럴싸하다.
▲ 원래 고춧가루(왼쪽), 믹서기로 갈은 고춧가루(오른쪽)
1) 제일 먼저 주방용 저울로 1kg을 담아 낸 고춧가루를 믹서기로 갈아 놓았다.
김장용 고춧가루는 입자가 커서 고추장 담기에는 너무 거칠기에 곱게 빻은 것이다.
아니 방앗간에 갔다면 빻았다고 하는 것이 옳겠지만
믹서기를 이용했기에 갈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 주방용 저울이 1kg밖에 재지 못하니
찹쌀을 여러번 나누느라 소꼽놀이 했음
2) 찹쌀을 3시간 동안 물에 불린 후, 역시 믹서기로 갈았다.
▲ 엿기름물
3) 엿기름에 물 2리터를 붓고 주물럭거려 3시간을 담가 놓았다.
3시간 후 물을 걸러 찹쌀가루에 부은 후, 전기밥통에 보온으로 가두었다.
오후 8시에 가두었으니 내일 새벽 5시 경에 열을 것이다.
4) 한번 거른 엿기름에 다시 4리터의 물을 부어 놓았다.
아침에 걸려서 삭힌 찹쌀식혜에 함께 넣어 끓일 것이다.
하니 나는 물을 6리터 사용한 것이다.
▲ 삭힌 찹쌀식혜를 새벽에 뒷베란다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서 끓임
5) 새벽 5시 30분부터
다시 거른 엿기름물을 더 넣은 식혜 물을 1시간 30분안 끓이니 약 5리터로 줄어들었다.
불에서 내리기 직전 조청을 넣어 잘 풀어지게 했다.
▲ 끓인 찹쌀식혜물, 고춧가루, 메주가루, 천일염
6) 끓인 식혜물이 어느 정도 식으면 메주가루와 고춧가루를 넣을 참이다.
뜨거울 때 고춧가루를 넣으면 색이 거무스레해진다고 하니 식혀서 넣으라고 한다.
한꺼번에 다 넣으면 저어 풀어주는데 힘이 들 것 같아
조금씩 나누어 넣은 다음 멍울이 없도록 저어주노라니 손에 쥐가 난다.
아픔 뒤에 자주 오는 현상이다.
▲ 사진 찍을려고 그릇 주위를 깨끗하게 닦았음.
남은 소금은 항아리에 담은 뒤 위에 올려놓을 양 (짐작으로 넣고 남겨둠)
묵은 고춧가루인데도 색깔이 곱게 나왔다.
하루 이틀쯤 숙성시킨 후,
조금 되다 싶으면 매실청을 넣어 다시 저어준 뒤 항아리에 담을 것이다.
아껴둔 항아리 두 개도 깨끗이 씻어 식초 물에 헹군 다음
베란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내 놓았다.
마음이 참 뿌듯하다. 부디 잘 숙성되어 맛있게 익었으면 좋겠다.
내 아픔이 앞으로 4년 동안 별 탈 없으면 완치라는 표현을 할 것이다.
물론 그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고추장이 잘 담가지면 나머지 고춧가루도 고추장으로 만들 것이다.
볕 잘 드는 곳에 숙성시키면서 아껴먹으면 4년은 지날 것이니
나의 동반자가 될까?
고추장이 눈 흘기며 저만치 달아난다.
각자 제 몫만큼만 하고 서로 간에 그만큼의 세월만 보내자고 한다.
그렇구나! 각자의 몫!
내 몫은 아직도 묵직하니 어느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 3일 후, 항아리에 옮겨 담았음.
옥상으로 올려 뚜껑을 여닫으며
햇볕을 마음껏 받게하려고
망사 커버를 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