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풀
▲ 이질풀
바람결이 달라졌다
바람결이 달라졌다 함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일 것이다.
여름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남동풍으로 해풍이어서 습도가 높은 바람이지만
겨울은 육지에서(시베리아)불어오는 북서풍으로 건조한 바람이다.
겨울로 가기 전 가을은
남동풍 반, 북서풍이 반씩 섞인 바람일 것이니 아마도 남서풍이 아닐까.
습도도 온도도 딱 알맞게 바뀐 바람결에
나무들도 식물들도 제 잎들의 뒤집는 방향을 달리하며
여름 내 눅눅했던 제 몸 말리기에 퍽 좋아할 것이다.
온 세상의 만물들이 이 바람결을 좋아할 것이니
내 마음도 방향을 바꾸고 새 계절을 맞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점심시간에 살금살금 바람결을 따라 나섰다.
공원 저수지 아래쪽 넓은 터는
벚나무가 수 십 그루, 우람한 일본 목련과 은행나무가 잘 자라고 있으니
봄이면 초등학생, 유치원생들이 소풍 나와 신나게 노는 곳이다.
올 봄에는 벚꽃도 일본 목련꽃도 은행나무 새 잎도 만나지 못했다.
벚꽃도 없고 아직 은행잎도 물들지 않은 그곳을 찾아 나선 까닭은
땅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잡초 우거진 그곳에는 온갖 꽃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면 민들레, 양지꽃이 지천이고
지금쯤이면 이질풀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때이다.
아, 그런데 그 많고 예쁜 꽃들이 드물게 피어 있었다.
동안 꽃들도 아팠을까?
아님 찾아오지 않은 나에게 서운했을까
드문드문 피어 있는 이질풀들의 선명한 색의 꽃이 갑자기 슬퍼보였다.
저들을 가까이 만나 반갑게 인사하려면
내가 성큼성큼 그들 곁으로 가야하는데
풀을 헤치고 걸을 용기가 없다.
약해진 면역력으로 감염에 주의하라는 의사의 당부가 있었기에
행여 모기에 물리기라도 할까봐 다가서지 못하겠다.
그냥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이 여겼을까
꽃 몇 송이가 친구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맑은 진한 꽃분홍 얼굴이다.
햇살에 실핏줄까지 고스란히 드러낸 얼굴하고도 찡그림이 없다.
자외선차단제라도 바르고 나올 일이지…
나라면 저 실핏줄을 감추려 화장을 했을 것이니
나의 모습을 감추려 했던 마음이 환한 꽃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내가 살아온 길 위에
나도 모르게 그려진 내 삶의 그림을 애써 감추려했단 말인가.
무엇을 보이려고 무엇을 감추며 살아왔을까.
앞으로는 저리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어리석게도
아픔이 나으면… 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말았다!
#. 이질풀의 꽃말은 ‘새색시’이니 꽃 색하고 정말 어울리는 꽃말이다.
이질풀은 옛날에 약이 귀할 때
설사와 이질에 다려 먹으면 효과가 있었고,
닭들이 설사 증세로 물*을 쌀 때, 이 풀을 뜯어다가
모이에 섞어주면 나았다고 하여 이질풀이라 불렀다고 한다.